기록보다 기억을

February 27, 2021

우리의 사람들

우리의사람들

다른사람되기

다른 사람을 그냥 그저 내가 아닌 사람으로 생각해도 좋은 걸까. 혹여라도 네가 남이라고 하면 서운함을 느끼는 경우를 위해 사람들은 인칭대명사 ‘우리’를 발명했고 박솔뫼의 소설집은 이 ‘우리’의 개념을 한없이 확장하는 이야기다.

「우리의 사람들」의 ‘나’는 부산에서 살고있지도 결혼해 아이를 기르고 있지도 않지만 부산에서 사는 나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한다. 아니면 온양에서 또는 후지노에서 새해를 맞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고 그것은 그러려니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박솔뫼 유니버스’를 탐사하는 가장 온건한 방식이다. 이를테면 부산이 좋은 곳이라든가, 추운 것은 싫다든가…

「건널목의 말」이 전개되는 방식은 꽤 소박한데 겨울을 사는 내가 여름을 사는 나를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미 죽은 열두명의 여자들과」에서는 아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눙쳐지던 대안적 공간이 초현실적으로 하지만 선명하게 그려지는 방식으로 다른 수록작들과 비교해 이질적이다. 다른 사람을 상상하거나 다른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떨 때는 살풀이가 되어야 하고 이 점은 「매일 산책 연습」에서도 떠올릴 수 있다.

「매일 산책 연습」은 최명환의 집에서 살아가며 공간적으로는 최명환과 연결되고, ‘블라우스를 입고 긴 치마를 입은’ 젊은 최명환을 거쳐 시간적으로 격절된 김은숙이라는 사람과 연결되는 과정을 능숙하게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의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매일 산책 연습」의 엔딩이다. “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들을 수 있겠어?” / “네가 준비가 되면 나는 말할 수 있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이 되거나 상상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그만두고 이야기는 그게 얼마나 책임이 따르고 무섭고 준비가 필요한 일인지를 다시 읽는 이에게 상기시켜준다.

마지막에 놓은 단편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의 마지막, 영우와 아키비스트의 후일담은 이런저런 공간적 배경들을 늘어놓고 그곳에 가보지 못한 사건과 거기서 일어났던 일들을 늘어놓는데 인물들이 어떤 곳에 가보거나 가보지 않았던들 심지어 도서관의 보관실에 갇히더라도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 박솔뫼의 부산처럼 특별한 공간 정도가 예외가 된다.

이 소설집을 정리하는 한 문단만을 꼽으라면 소설집 전체의 마지막 문단인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의 마지막 문단을 꼽겠다. “보관실에 갇힌 사람은 죽지 않고 잘 살아가고 짝이 없는 사람은 벽에 대고 테니스를 치다 어느새 테니스장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쉬지 않습니다. 한복집에서 커피를 마시던 주인은 맞아 그래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이야. 그리고 그 사람은 여전히 한복을 입지 않고 있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 이미 지나간 일은 영원하고 반복되며 심지어 박솔뫼의 소설에서는 다르게 반복될 수도 있다.

어떤 소설을 읽으면 과연 나는 지금 어느 시간대의 어느장소에서 무얼 하고있는걸까 싶은 생각이 들고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만 설령 그게 아니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박솔뫼 소설이 가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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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