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0 볼넷을 두려워하지마

June 30, 2020

올해의 프로야구는 리그 외적인 이유로 전례없는 시즌이 되고있고 덕분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1. 경기 일정이 빡세진 만큼 팀 뎁스가 중요해졌고, 그래서 신인과 백업선수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2.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니 관중이 지켜보는 부담이 없어 경력이 짧은 신인투수들의 성적이 좋다. 3. 오랫동안 기다렸던 베이징 세대가 온전히 도래했다. 결과는 언제나 더 많은 드라마다.

선동열이 되어버린 구창모, 이정후와 강백호의 예견된 경쟁, 나성범의 부활, 스트레일리의 분투… 주 단위로 쏟아지는 스토리와 가십들 사이에서 내게 이상한 울림이 남은 것은 ‘볼넷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정현욱 코치의 조언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노성호는 89년생인데, 별명은 노로호다. 시속 150km가 넘는 포심 패스트볼을 가볍게 던지는 왼손투수지만 던진 공이 어디로 꽂히는지는 본인도 모르고 강민호도 모르고 부처님도 모른다.

제구가 안되는 좌완 파이어볼러도 좌완 파이어볼러. 어느 팀이건 터질 때까지 안고 가야하고 그래서 노성호는 NC에서 2012년부터 일곱 시즌을 선발과 불펜, 1군과 2군을 전전하며 보냈다. 폭투와 볼넷. 폭투와 볼넷. NC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2020년 2차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노성호를 지명한다. 그리고 노성호는 (6월 30일 현재 15 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리그 최고 수준의 불펜에서의 필승조로 지난 노성호의 모든 시즌을 합한 것보다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노성호의 괄목할 변화는 온전히 정현욱 투수코치의 공이다.

노성호에 대한 정현욱 코치의 주문은 볼넷을 주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처음 앞의 문장을 들었을 때 나도 보통의 야구팬처럼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워댔다. 제구가 안되는 파이어볼러에게는 으레 ‘맞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가운데로 던져, 볼넷만 주지마’라는 조언을 코치가 해주고 투수는 그렇게 맞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몇 달 전 <스토브리그>에서도 보여준 적 있고 수도 없이 많은 야구만화에서 등장하는 클리셰기 때문이다. 곱씹을수록 묘한 주문이다. 연속 볼넷이 나오고 주자가 누적되고 끝내 밀어내기와 대량실점이 나오는 것은 모든 야구팬들의 악몽. 그런데도 볼넷을 두려워하지 말라니. 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

‘맞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는 맞는 것을 네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타이트한 승부에서, 더군다나 주자가 나와있을 때의 불펜투수가 안타나 홈런을 맞고 역전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가장 무서운 일일까? 정말로 두려운 것은 볼넷이다. 보통의 파국은 끝내기 홈런처럼 극적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수준의 투수와 타자가 보통의 상황에서 만났을 때 안타를 맞을 확률은 3할이 되지 않는다. 홈런을 맞을 확률은 그보다 매우 적다. 클러치 상황에서는 내가 볼넷을 주고 폭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그것이 훨씬 실제적인 위협이다. 노성호처럼 볼넷을 많이 주는 선수에게는 훨씬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볼넷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언이 성립이 되는 것이다.

파국은 보통 극적으로 오지 않는다. 극적인 것은 오히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를 망하게 하는 것도 볼넷이나 폭투처럼 일상적이고 회피적인 무언가고…

그걸 알았다면 이제 그걸 두려워하지 않으면 된다.


Written by 김정교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