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희,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20

March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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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걸작들의 프로듀서라는 꼬리표는 영화의 半홍상수적, 그래서 反홍상수적인 부분들을 반복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노골적인 패러디를 지나서 홍상수 영화의 좋은 고갱이를 쏙 뽑은 것 같은 장면들은(이태원 부군당 공원에서 찬실이 희망가를 부르는 장면과도 같은) 너무도 아름답다. 이 영화의 웃음 중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장국영이 사용되는 방식 역시 홍상수를 떠올리게 할 수밖에 없는데, 비교하면 의뭉스러움과 거기서 발생하는 분위기 그리고 의미망은 덜한 대신 기막힌 유머와 선명함이 존재한다.

강말금 배우에 당연히 관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제목에도 등장하는 이름, 찬실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배우 이름이 더 캐치할 수 있을까. 찬실의 사투리는 영남 사람이 서울로 올라와서 십여년 정도 살았거나 사투리를 열심히 고쳤(다고 생각했)을 때 사용하는 말투인데 이 역시 유니크하고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세팅에 대해 한 마디 얹자면, 뭔가를 위해 십 년을 몰두하며(남자도 안지 못하고…) 살았던 찬실이 갖는 방황과 좌절은 내 세대, 곧 찬실의 아랫 세대에게는 다소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점. 첫째로 ‘하고 싶은 것’이라는 낭만적 대상을 원하지 않는다. 둘째로 원한다 할지라도 그런 것을 찾을 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런 시대기 때문에.

엔딩에서 찬실이 손전등을 비추는 장면은 흥미로운데 산길을 여러명이 후레시 한 개를 비추며 갈 때는 보통 후레시를 쥔 자가 앞장서게 되어있기 때문에. 전구를 사러 가는 길에 전구를 쥐고 있는 사람. 우리가 믿고 싶은 것, 우리가 보고 싶은 것, 우리가 하고 싶은 것.


Written by 김정교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