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쓰홍, 귀신들의 땅, 2024
— 독서
읽으며 몇 가지 이름들이 떠올랐는데 마르케스, 『리틀 라이프』, 아고타 크리스토프, 레드캔들게임즈의 게임들. 마르케스가 떠오른 것은 당연히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마술적인 장면들 때문이다(덥고 습한 기후에서는 정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고래』같은 소설은 재미는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부분도 많은데 작년에 부커상에서 받은 하이프를 생각하면 외국어로 번역될 때 문턱이 확 낮아지는지도. 한나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떠오르는 것은 또 당연한데 퀴어 주인공의 기구한 삶과 감각적인 장절구분 때문에. 직소퍼즐처럼 흩어진 챕터들이 맞춰질 때 쾌감과 고통을 동시에 수반한다. 작년에 『반교』를 플레이했고 사오년 전에 『환원』을 플레이했는데 삼국군영전 시리즈 정도를 제외하면 내가 대만 게임으로 인지하고 플레이하는 게임은 레드캔들게임즈의 게임들 뿐이고 그래서 이 나라는 정말 귀신들로 가득차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는 계기였다.
… 몇 시간 뒤에 저는 타오위안(桃園) 공항 게이트 앞에서 독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자신을 상대로 내기를 했습니다. 1분 내에 지상근무 요원들이 보딩 시작 안내방송을 한다면 핸드폰으로 『귀신들의 땅』 한국어판의 사진을 찍어서 서울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보내기로 한 것이지요. 그에게 “이봐, 내 소설이 한국에서 출판됐어.”라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습니다. 청춘 시기에 짧게 찾아왔던 여름날의 들뜬 연정이었지요. 당시 이별을 고하면서 그가 말했습니다. “한국에 오게 되면 날 찾아줘, 알았지?” 저는 한 번도 한국에 그를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나 저의 책이 저보다 먼저 한국에 가게 되었네요.
지금은 독일에서 이 답변서를 쓰고 있는데 그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서울에서 제 소설을 사서 방금 다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울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또 자기 딸에게도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하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작가와 아는 사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자 인터뷰 읽는데 읽으면서 기가 막혀 껄껄 웃었다. 책날개의 프로필만 읽어도 다분히 자전적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인터뷰에마저 귀신같은 에피소드를 넣어줄 수가 있단 말인가.
최근에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없었는데 이렇게 아픈 이야기가 높은 오락성을 가지고 있을 때 함부로 꿀잼이라고 얘기 못하는 것은 참 안타깝다. 대만은 제주국제공항에서 직항으로 편하게 가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기 때문에 조만간 방문해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