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 종이동물원, 2018
— 독서
이 책 사실은 조금 표제작 사기에 가깝다고 본다. 표제작 <종이 동물원>은 엄청나게 서정적이고 뛰어난 단편이다. 그러나 다른 단편들은 수준이 그에 못 미친다. <종이 동물원>이 첫 부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뒤로 갈 수록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이야기하며 테드 창과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인데, 일단 중국계 미국인 작가이며 첫 단편집이 센세이셔널했다는 점에서(둘 다 MS에서 일한 적 있는 엔지니어라는 점도 물론). 심지어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같은 단편은 테드 창의 영향을 받았다고 쓰여있기까지 하다(물론 쓰여있지 않아도 이거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라고 떠오르게 되어 있다. 마지막 순서로 배치한 것까지 통째로 오마주다). <종이 동물원>의 주제 역시 <당신 인생의 이야기>처럼 모성을 소재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네 인생의 이야기> 원툴이 아니냐? 그럴리가. <지옥은 신의 부재> 라는 걸작 단편이 있는데.
다소 가혹한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좋은 책이다. 다만 특히 좋았던 단편은 <즐거운 사냥을 하길>, <파자 점술사>, <송사와 원숭이 왕>인데 셋 다 작가의 출신 배경에 기대고 있다(각각 홍콩의 산업화, 대만의 2.28, 대륙의 양주대학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잘 쓴 이야기들이지만 이민자로서의 모국에 대한 다소 노스탤직한 접근이 이질감을 준다고도 생각한다. <패스트 라이브스>와 <파친코>에 대한 포스팅에도 썼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