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J. D. 밴스, 힐빌리의 노래, 2016

독서

hillbilly-elegy.jpg

이날까지도 나는 누군가를 ‘필요할 때만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부모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누나와 나는 굶는 한이 있더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는 줄 알고 살았다. 우리가 의지했던 사람 대부분이 사실은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나는 할보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남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평생에 걸쳐 받아야 할 호의를 미리 다 써버리지 않도록 삶의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어릴 때도 먹을 음식이 없거나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도움을 구하는 행동조차도 과하게 하면 안 되는 사치로 여겼다. 우리 남매의 이런 경향을 없애주려고 할모와 할보가 무던히도 애를 썼다. 드물게 좋은 식당에 갈 때면 두 분은 내가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대답할 때까지 내게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끈질기게 물었다.(…)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됐던 2017년에 나는 종종 영문원서를 읽었고 때문에 Goodreads같은 웹사이트를 들르면 <힐빌리의 노래>는 명실상부한 ‘올해의 책’이었다. 그 때는 인연이 닿지 않아 읽지 못했고, 그 즈음 정계에 입문한 밴스는 당시에 공화당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는 ‘보리수’ 컨셉이었다. 책이 출간된 이후 트럼프는 당선되고 박근혜는 탄핵되고 조 바이든이 당선되고 국회는 습격당했으며 윤석열이 당선되고 법원이 습격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트럼프와 이 책의 저자 J.D.밴스가 나란히 대통령과 부통령이 되었다.

켄터키 잭슨과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보냈던 밴스의 즐거웠던 유년시절과 끝없이 아버지가 갈아치워지며 보냈던 비참했던 성장기를 엄청난 몰입감으로 풀어낸다. 해병대에 입대하고 파병을 가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하루에 세 시간 자면서 많은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시고, 예일 로스쿨에 들어가 졸업을 해서 로펌에 들어가는데까지 이야기하고 여느 좋은 메모아들처럼 보편적인 이야기로 끝맺기 위해 그놈의 복지여왕 얘기를 참지를 못하고 입털면서 책이 끝난다.

읽으면서 어릴 때 생각도 많이 났다. 나도 가졌던 어떤 갈림길들.

저자가 그 고난을 겪고 노력을 하고도 이런 쓰레기가 되다니 사람에게 억하심정이 얼마나 무서운가? 나로 말하자면 내게 세상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고 작은 방 하나만 있으면 족했다. 백인들 특히 미국인은 세상이 자기 것이 아님을 유별나게 서러워 한다. 내 생각에 모든 아이들은 아시아 인 부모에게 키워져야 한다. 어릴 때 다들 그 정도 벌은 받아야 한다.

밴스가 졸업한 오하이오 주립대를 친구가 다니고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콜럼버스라는 도시를 들어봤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 2025 by linkandbacklink. All rights reserved.
Theme by Leko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