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베이커, 아노라, 2024
— 비디오

아카데미 방송을 집에서 봤다. 너무 길고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아서 틀어놓고 딴짓하고 침대에 누웠다 일어났다 하면서 있었다. 그러다 자고 일어나니 『아노라』가 주요 부문을 싹 쓸어먹고 끝나 있었다. 그러고 주말이 되니 제주에서 지독하게 보기 힘든 영화들인 『아노라』, 『콘클라베』, 『브루탈리스트』가 모두 절찬상영 중이었다. 다음 주만 돼도 다시 내려갈거면서… 그래서 저 중 하나를 보기로 했고 그렇게 아노라를 본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뭘 기대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지만 기대한 것이 빗나갔다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는 이야기 도중 두 번 뒤집어진다. 일을 하다 만난 철 없고 순진한 부자 꼬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다 결혼까지 하는데 까지 물 흐르듯이 행복하게 흘러간다. 그러다 신혼집에 불청객이 찾아온 순간 남편은 도망가버리고 영화는 굉장히 재미있는 로드무비가 됨. 남편을 찾고 시어머니가 전용기를 타고 도착하는 장면부터 영화는 또 한 번 꼬이고 마침내 분명하게 아름다운 엔딩으로 도착한다.
오마주가 많다지만 하나도 떠올리지는 못했고 그럼에도 자잘한 할 얘기들이 많은 영화였다. 남편과 헤어지고부터 크레딧이 올라가기까지 영화가 내린 결정들이 숙고할 만 하고 아주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