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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과학, 검은 신화: 오공, 2024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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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하는 얘기지만 나는 피학적 성향이 전혀 없고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세키로>는 플레이 한 시간 만에 봉인하였으며 그 중 가장 순한 맛이라는 <엘든 링>도 열 시간 정도 플레이 했지만 재미를 느끼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 역시 겸손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재미를 느끼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1장 까지는 플레이 하자. 1장 까지만 플레이 하자.

<오공>은 소울 류는 아닌데… 라는 말로 많은 설명이 시작한다. 게이머들은 개념어들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엄밀하지 못해서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3인칭 액션 어드벤처인데 조금만 어려우면 ‘소울 류’라고 부른다. 당연히 소울 류는 아니다. 죽는다고 뭘 떨어트리지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플레이하기는 좋았다. 리트라이에 아무런 부담이 없으니까(다만 향불에서 보스까지 한참을 가기는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1장 까지 11시간이 걸려 클리어했고, 상당한 재미를 느꼈다. 한정된 도구들을 언제 사용할지를 고민해가며 난이도 높은 보스를 딸피로 잡아낼 때의 쾌감이 상당했다. 맞을 때는 정말 소리를 질렀고, 두 시간을 고투한 끝에 막타를 쳤을 때는 탄성을 질렀다. 캐릭터와 나의 일치감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있었다. 이렇게 되니 난이도 조절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턴의 종류, 패턴의 개수, 체력, 기믹, 타격 범위와 피격 범위, 전조… 플레이 할 수록 조금씩 나아져야 하고, 유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깝게 실패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유저가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된다.

타격감이 별로였는데 그래서 더 절묘했다. 내가 맞히는 패턴이 명확하지가 않아서 운에 걸어야 할 때가 좀 있었다. <갓 오브 워>를 카피한 부분은 많았다. 스케일이 큰 오프닝과 빼어난 핸드헬드 카메라 연출이 특히 그렇다.‘여행기’ 항목은 텍스트가 정말 많은데 너무 재밌고(물론 거의 읽지는 않았음) 이런 게임을 만든 것이 부러웠다. 물론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서유기>는 동아시아 공통의 자산이라 이런 게임을 맥락 없이 번역된 언어로 플레이할 서구 게이머들이 우리를 부러워해야 한다. 한국의 비슷한 장르 게임들과 비교하면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가 못할 것은 없다. 시스템 적으로는 더 뛰어나고 참신한 부분들도 있다. 다만 스토리텔링이나 대담한 기획의 측면에서는 <오공>이 역시나 뛰어나다.

작년 8월에 판매되어 역대 비디오 게임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리고 있는 게임 시리즈지만 멀티플레이 요소가 없는 만큼 게이머들은 충분히 즐겼을 것이다. 몇 주 전에 <카잔>의 체험판을 플레이했을 때 <오공>과 꽤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형적 진행의 삼인칭 액션 어드벤처이나 소울라이크는 아닌. 지금 이 타이밍에 <카잔>이 출시해 준다면 <오공>으로 액션알피지의 재미를 느낀 중국 게이머들을 해갈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경혁,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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