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볼라뇨, 야만스러운 탐정들, 1998
— 독서

역시 이런 소설은 처음 읽어봤다. 읽어본 가장 삶에 가까운 소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칠레인인 아르투로 벨라노는 작가에게서 분명히 따온 인물이며, 울리세스 리마 역시 볼라뇨의 친구를 모델로 한 인물이고,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내장사실주의 역시 볼라뇨가 젊은 날 참여했던 문예 운동인 '밑바닥사실주의'를 본딴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소설의 구성이 낯설어서 읽는 데 애먹었는데 『야만스러운 탐정들』이 어떤 소설인지 조금 정보를 얻고 읽으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삶은 쓸쓸한 것이고 한 시절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드물게 다시 만나거나 아주 만나지 못한다. 새벽에 오래 전에 쓴 일기를 읽거나 예전에 찍은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이상하고 간지러운 감정이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나에게 울리세스와 벨라노가 의미하던 모든 것이 이제는 지나치게 머나먼 일이 되어 있었다. p.54
비록 마누엘을 이미 내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비록 반골주의가 사망했지만, 비록 삶이 우리를 너무 바꾸어 놓아 이미 그 무렵에는 서로 알아보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마누엘을 생각하고(…) p.126
하지만 클라우디아와 나, 그 무렵 아직도 작가가 될 거라고 믿었던 우리, 차라리 불쌍하다고 할 내장 사실주의자들의 그룹에 속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주었을 우리는 그랬다. 청춘은 사기극이다. p.307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고스란히 되찾을 수 있어. p.307
볼라뇨를 읽으려 한 계기들 중 하나는 당연히 후장사실주의자들일 것이다. 투비컨티뉴드에 연재한 금정연의 일기를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게 결국 가르시아 마데로가 쓴 일기의 패러디라고 볼 수 있고, 정지돈이 '오토픽션'하다 사고를 친 것도 결국 볼라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런 점에서 다음에 읽을 책인 『한 움큼의 슬픈 영혼들』을 읽기 전에 얼른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읽은 것이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가벼워 좋았고 가끔 등장하는 이름들을 검색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책의 압도적인 볼륨감을 즐기지는 못해 조금 아쉽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만나면 낯설고 반가울 듯. 아직 『2666』을 읽을 생각은 없다. 『칠레의 밤』을 다시 읽을 생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