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jamin Ree,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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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를 해본 적 없다. WoW의 황금기에 나는 유료 게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II 역시 제대로 플레이해봤다고 보기 어렵다. LoL도 북미섭 시절 몇 판 플레이한게 전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입네 하며 살고 있다. PC게임은 (특히 한국에서) 커뮤니티 적인 요소를 크게 갖고 있고 그 점은 MMO RPG에서 강조되는데 그럴듯한 MMO RPG조차 해본 적이 없다. 사람마다 게임을 이용하는 방법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별로 진지한 상호작용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줄곧 일종의 텍스트처럼 일방적으로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작년에 호평을 들은 다큐멘터리인데, 듀센 병을 선천적으로 앓아 휠체어에서 살아온 주인공이 WoW 에서 살고 있었던 또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 두 삶이 서로 간섭할 때 발생하는 감흥이 대단하다. 병세가 심해져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할 수 없어지거나 한참을 접속하지 못 하는 경우도 충격적이고, 게임 속 길드의 사람들이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장례식에 참석함으로써 마침내 마츠의 삶으로 승인 받는 장면도 감동을 준다. 메타버스라는 낱말이 천박한 농담이 되어버린 지금에 더 의미있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