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제, 증명과 변명, 2024
— 독서

내년에도 이 책이 재밌는지, 나에게 꼭 알려주기를. 번따는 줄이고 남 탓은 늘리기를. p.314
또래 남성들을 만날 때 분노와 피해의식으로 가득차 있는 경우를 꽤 자주 본다. 아직 나이도 젊은 축이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모아둔 돈도 그럭저럭 있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 있을까? 많은 현대인들이 조건적으로 괜찮아 보여도 내면으로는 지독한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 부조리는 남성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증명과 변명>은 청년 남성이 망가지게 되는 배경을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묘사한다. 다만 이 책의 인터뷰이는 분노와 피해의식 대신 자책으로 발산하고 그 점이 아마 인터뷰이를 저자의 친구로 남게 했을 것이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도 역시 저자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답답하기만 하고 웃기지도 않는 얘기들을 나는 이렇게 친절하게 들어줄 자신이 없다. 심지어 그렇게 드문 이야기도 아니지 않나. 우진이같은 친구들, 주변에 가끔 있고 그 내면을 짐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친구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남의 마음을 넘겨짚는 것도 할 일이 아니다. 저자의 집요함은 이 자의식 과잉 남성 친구의 생애사를 독자에게 그럭저럭 떠먹이는데 성공했고 마지막 장을 읽으며 조금은 동정할 수 있게 한다(동정은 이 책에서 꽤 중요한 감정이다. 동정할 가치가 있을까? 희제는 우진을 동정했을까? 악질적 농담이지만 책에서는 우진이 동정인 것도 중요함).
이대로는 안되고 더 큰 것으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도박의 형태로 내내 표출되고 그게 안타깝다. 백 퍼센트 실패하는 ‘번따’로 시작하여 수능을 여섯 번이나 응시하는 것이나 그 궁극적인 형태인 주식투자까지. 그야말로 모두를 ‘도박사 봅’으로 만든다z`. 인터뷰이가 그래서 죽었는지는 내 생각에 전혀 궁금하지 않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