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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 연매장, 2025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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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절반은 딩쯔타오가 기억을 잃어버린 시점부터 시간이 역행으로 진행되는 이른바 메멘토식 구조다. 그러다보니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책의 중반부부터 펼쳐지게 되고 자연히 뒤쪽은 힘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훌륭하고 생각해볼 만한 반전(<속죄>식의 반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멋지다. 엔딩도 품격 있다. 읽으며 딩쯔타오가 의식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없기에 납득되는 방향으로 엔딩이 났다고 느끼며 에필로그마저 사족이 아니다.

책이 웃기기도 제법 웃기다.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류샤오안 내외는 건설사 사장인 동생이 보내주는 돈으로 부모를 봉양하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심지어 그마저도 제대로 일하지 않고 딩쯔타오의 아들인 칭린에게 떠맡기는게 너무 재미있다. 칭린이 어릴 때 자신을 길러주다시피한 가정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류씨 집안 사람들이 언제 알게될지 짐작해보는 것도 서스펜스 요소다. 독자를 정말 폐허 뿐인 대륙의 오지로 데려가서 그 때 있었던 일의 진실을 진심으로 궁금하게 한다.

중국의 토지개혁은 그보다 한참 후에 일어난 문혁에 가까운 사건인데 다만 대상이 지주 등 유산 계급을 향했다는 점. 감당할 수 없는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을 핍진하게 그린다. 인민재판이라는 것은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유럽보다 동아시아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유교문화 때문에 자기수양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라 그런 것인지. 가장 비슷하게 현대에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아마 농활 때의 총화인데 요새 총화도 그렇게 무섭게 하지는 않겠지. 생선요리, 도삭면, 노주노교 등의 맛있는 중국 음식들이 궁금해지는 책.

김소민, “中작가에겐 ‘글쓰기 금지 구역’ 있어…그럼에도 금기를 깨고 한 발짝씩 가야”, 동아일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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