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노프, 체벤구르, 1928
— 독서
체벤구르도 정말 오랫동안 읽은 소설이다. 내 기억엔 아마 2012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5년 즈음에도 한 번 읽으려 했던 적 있는 것 같고 언젠가는 마저 읽어야지라고 생각을 했다가 구입한 이후에야 끝내 읽을 수 있었다.
장절구분이 명확하고 인물 관계가 형식적인 소설이다. 1장은 사샤의 어린 시절 전반을 다루며 자하르 파블로비치와의 관계 그리고 당에의 입당과 지방으로의 파견까지를 다루고 있다. 나머지 장들에 비해 가장 완성도 있고 읽을 만하다. 2장 열린 심장으로 떠나는 여행은 코푠킨과 사샤가 소비에트 곳곳을 누비며 공산주의를 전파하고 검증하는 굉장히 희극적인 챕터다. 코푠킨이라는 인물은 프롤레타리아의 힘이라는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때려 부수고 총으로 쏘며 사회주의를 이식하는 기인인데 로자 룩셈부르크를 사진만 보고 너무나 연모하여 숨 쉬듯 로자! 를 연호하고 로자의 꿈을 꾸며 잠을 이룬다(체벤구르의 일본인이 체벤구르에는 리프크네히트 동상이 있다고 말하자 리프크네히트가 로자랑 샤귀었나고 물어보는 장면에서는 정말 빵 터졌다). 3부 체벤구르에서 이제 소비에트 유토피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비참한 내용들이 이어져서 당혹스러웠음. 체푸르니와 프로코피가 마치 코푠킨-사샤의 열화 버전의 콤비로 나오고 이 조합이 볼만했다.
문장과 관점이 신선하고 낯설어 지적 자극과 감동을 주는 반면에 러시아 소설 특유의 착란적 행태를 보이는 인물들이 이야기를 마구 훼손한다는 인상을 받는다(도스토예프스키는 절대 그런 짓 안 함). 슬픔의 정서가 작품 전반을 감고 돈다. 이를테면 잠을 자는 사람의 얼굴을 응시하며 그 속에서 슬픈 것을 발견하는 식이다. 개인의 삶에 대한 사적이고 유물론적인 응시. 사람들이 참 쉽게 죽어나자빠지는 이야기답다. 그 와중에도 자하르 파블로비치가 늙은 채로 살아남아서 아들과 엇갈려 마주치지 못하는 엔딩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