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시로 미유키, 위국일기,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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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책으로 처음 읽고 애가 좀 큰 요츠바랑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언제 완결이 되었고 애니메이션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봤는데 역시나 만족스러웠음. 최종화를 다 보고 아직 감정에 푹 젖어 있을 때 실수로 아라가키 유이가 이모로 나오는 실사영화(2025)를 재생했는데 오프닝부터 빵 터져버렸다. 대충 쓱쓱 넘겨만 봤는데 부모가 죽고 아사가 아이스크림을 툭, 하고 떨어트리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아사의 컵이 깨지는 장면, 에미리가 누굴 만나는지를 창 밖으로 발견하는 장면까지...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하지 않아 좋았던 장면들을 모두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매우 형편없어 보였는데, 쓱쓱 넘겨봐서 미안하네 많은 영화가 쓱쓱 넘겨봤을 때 형편없어 보일지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꽤 다른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반부에서 인물 소개와 설정, 기본적인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은 다음 후반부에서는 1년 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남의 집 애가 크는 것처럼 빠르게 지난다. 이를테면 9화에서는 세 종류의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의 대사를 마구잡이로 섞어두는데 꼭 맞아떨어진다고까지는 생각이 들지는 않고 조금 부산스러운 감도 있지만 이것이 세련되었다고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한편 또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10년 후의 에미리가 인서트로 등장할 때 놀랍기도 하면서 시차를 느끼는 어지러운 감각에 빠져들게 되고 그게 너무 좋았다. 전반부는 카사마치군과 변호사 선생을 출연시키며 마치 이모의 남편 후보 둘이 나오는 재미있는 낚시를 걸지만 이것이 마치 후반부의 여성주의 주제에 대한 밑작업으로 쓰이는 인상이 좀 있다. 친구인 치요의 의대 합격자 조작 사건이나 야구부 소년과 카사마치군의 맨박스 체험담, 바로 그 '피프티 피플' 장면 등이 폭발적으로 나열되는데 기술적으로 좋게만은 안 보였지만 자못 흥미로웠다.
이야기로 보면 흥미로운 것이 역시 마키오 언니와 마키오의 관계. 마키오의 언니는 평범하게 사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성격이 마키오와의 분란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모자란 남편을 만나며 금이 갔고 더 이상 동생과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동생을 이해하고 조금은 존경하게 됨. 그리고 딸을 잘 키우기로 함. 그렇게 해서 독자들이 만나는 아사는 정말 작품에 가까울 정도로 잘 키운 애니까 나름의 성공을 거둔 셈이고 결국 마키오가 조카를 매개로 죽은 언니와 화해하게 되는 결말이 아름다웠다.
장면으로 치면 또 에미리가 여자친구를 만나서 데이트하는 장면을 서늘하게 잘 만들었음. 주인공이 보내는 메시지를 스와이프 해서 씹으 면서 만난 애인에게 아사 얘기를 하는데 걔 부모님이 죽어서 난 걔랑 평생 친구 해야돼, 이런 무서운 얘기를 마치 귀찮다는 듯이 하는 차가운 장면을 오래 기억할 듯.
아사는 어느 집에 갔어도 이쁨 받고 똑똑하게 잘 컸을거다. 이모는 카사마치같은 유니콘으로도 답이 없는 문제아였는데 어떻게든 지나간 일 년 동안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결국 이야기는 그런 이모의 성장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