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2023
— 독서
우선 어떤 책인지 알게 되고, 그 다음 제목을 읽고, 제목을 이루는 세 개의 어절이 전해주는 분명한 진실에 탄식하고, 인터넷 서점의 인용 꼭지에서 동시에 내가 그를 미워하는 건 그가 정확히 가사와 돌봄에서만 특유의 진보성을 잃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이 있음을 확인한 다음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아름답고 명확하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글이었다.
... 보호자에게 무균실은 정말 고통스러운 곳이었다. 좁고 덥고 축축한 어항 속에 있는 느낌이다. 이코노미석에 앉아 영원히 비행하는 벌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p.28
... 여기 병동에도 해리엇이 많았다. 이유식 만들 때부터 난각번호 1번 계란에 무항생제 유기농 재료로만 음식을 해먹였는데 결국은 아이 몸에 항생제와 항암제를 들이붓게 됐다고 했다. p.41
『일인칭 가난』에 이어 읽은 아주 훌륭한 논픽션이었다. 한편 두 책을 좁은 간격을 놓고 읽으며 중산층 정상가족의 재난에 너무 쉽게 이입하는 나를 보며 입맛이 썼다. 이코노미 석이라니 이 얼마나 계급적인 비유인가. 책의 문장이 너무 유려한 탓이겠지. 그럼에도 동시대의 개인이 쓴 두 책을 나란히 읽으며 여성과 계급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은 호사에 가까울 정도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